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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메모

기억의 무기화와 승전 기념일

2025년 5월 9일자 Geopolitical Futures의 기사 「Victory Day and the Weaponization of Memory

By: Antonia Colibasanu

 

프라하의 조용한 승전 기념일

나는 지금 체코 프라하에 있으며, 찰스 대학교의 지정학 석사 프로그램 일환으로 지정경제학(geoeconomics)을 강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항복을 기념하는 '유럽 전승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을 맞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 공휴일이 진행되고 있다. 대학교 주변은 주거 단지와 사무실이 섞여 있는 지역인데, 커피숍은 평소보다 늦게 문을 열고 일부 상점은 아예 문을 닫았다. 식당은 대부분 지역 주민과 소수의 방문객만을 상대로 영업 중이다. 기념은 작지만 엄숙하게 이루어진다. 지역 경찰이 제2차 세계대전 추모 명패에 꽃을 바치고, 행인들은 잠시 멈춰 읽거나 아이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한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5월 8일

체코는 5월 9일이 아닌 5월 8일에 승전기념일을 지킨다. 이는 서유럽 전통을 따르는 것이며, 슬로바키아도 마찬가지다. 이는 두 나라가 과거 동구권 국가들과 차별화된 기억 문화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냉전 시절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하나의 위성국으로 묶여 있었지만, 1992년 분리된 이후에도 비슷한 기념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벨기에 같은 서유럽 국가에서는 5월 8일이 공휴일이자 조용한 추모의 날이다.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가 아닌, 조용한 기념식이 열린다. 나는 과거 노르망디의 한 시골 마을에서 5월 8일을 보내본 적이 있는데, 현충탑과 묘지에서 헌화식이 열리고, 지역 당국자가 평화와 화해를 강조하는 연설을 했었다.

서유럽의 전승기념일 의미: 군사적 승리보다 민주주의의 부활

서유럽에서의 5월 8일은 단지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삼는 날이다. 나치 독일의 패배뿐 아니라, NATO와 EU 같은 국제 제도를 통해 전쟁을 방지하려 했던 서유럽의 전후 유산을 반영한다. 즉, 이 날은 자유민주주의의 부활과 군국주의, 민족주의, 분열의 거부를 상징하는 날이다.

동유럽의 복잡한 기억: 해방인가, 새로운 억압의 시작인가

반면,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발트 3국 등 동유럽 국가들은 5월 8일도 9일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한 억압의 끝과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이었다. 소련의 '해방'은 나치의 잔혹함을 끝냈지만, 곧이어 스탈린 치하에서 강제 이주, 숙청, 반대 의견의 침묵 강요가 뒤따랐다. 독립을 되찾은 뒤, 이들 국가는 역사 서술을 재정비했다. 루마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적군(붉은 군대)을 기리는 소련 시대의 기념비를 철거했으며,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이중 점령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개정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전환: 5월 9일에서 8일로

2023년, 우크라이나는 전승기념일을 5월 9일에서 8일로 바꾸었다. 그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5월 8일을 ‘1939–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나치즘 승리에 대한 추모와 승리의 날’로 정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 법령은 곧바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는 2015년 포로셴코 대통령이 도입했던 이중 기념일 – 5월 8일은 '추모와 화해의 날', 5월 9일은 '나치즘에 대한 승리의 날' – 체제의 종료를 의미한다. 또한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역사 기억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명확한 움직임이었다.

예상 밖의 곳에 남아 있는 소련식 기념 방식: 헝가리의 모순

하지만 소련식 기념 방식의 잔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헝가리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군의 무자비한 진압을 뼈아프게 기억하면서도, 5월 9일에 공식 기념식과 헌화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모순처럼 보인다. 내가 조지 프리드먼과 함께 부다페스트를 방문했을 때마다 우리는 헝가리가 1956년 미국의 미개입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 분노는 아직도 남아 있으며, 미국의 사과나 인정이라도 바라는 듯하다.

체코 vs 헝가리: 서로 다른 외교적 정체성

체코와 헝가리는 중앙유럽의 교차로에 위치하지만, 문화적·정치적으로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체코는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서유럽 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그들과 더 가깝다. 반면, 헝가리는 중앙유럽뿐 아니라 발칸, 러시아의 영향도 받는 정체성을 지닌다. 이러한 이중적 정체성은 헝가리 외교 정책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설명해준다.

전략적 실용주의와 러시아 관계

헝가리는 1956년의 배신에서 비롯된 미국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으며, 이후 전략적 실용주의를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는 미국조차도 러시아를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특정 분야에서 불가피한 파트너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헝가리의 외교는 반항이라기보다는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적응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전승기념일: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권력

헝가리의 균형 외교는 러시아가 전승기념일에 투사하고자 하는 내러티브를 반영한다. 5월 9일, 모스크바에서는 전통적인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탱크가 붉은 광장을 지나고, 참전 용사들이 훈장을 달며, 푸틴 대통령은 조국 수호의 영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날은 이제 단순한 추모일이 아니다. 권력의 시연이다. 전승기념일은 크렘린의 이데올로기 프로젝트 핵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단합의 상징이 분열의 도구로 바뀌었다. 러시아는 자신을 반(反)파시즘과 외세의 방어선으로 그리며, 이 신화를 현재의 군사 작전 정당화에 이용한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는 반대 세력을 "나치"로 규정하여 국내 동원을 유도하고, 국제사회를 자극하려 한다.

과거의 조작이 더 위험한 이유

역사의 조작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에서는 더욱 위험하다. 전승기념일은 이제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관을 강하게 주장하는 수단이 되었다. 러시아는 자신이 적대적인 서방에 포위되어 있으며, 강한 힘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외교적 연극이 아니라, 계산된 메시지다.

시진핑의 참석과 중러 전략적 결속

올해 전승기념일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모스크바와 베이징 간 전략적 공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이념이 아닌, 공통된 이해관계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반감에 기반한 것이다. 시 주석의 참석은 푸틴의 서사에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러시아가 고립되어 있다는 서방의 주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행동이었다.

중국의 메시지: 다극 세계질서의 선언

중국에게 전승기념일은 자신의 세계관, 즉 서방 자유주의가 더 이상 국제 규칙을 독점하지 않는 다극적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다. 시 주석은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약속하지는 않겠지만, 서방 제재에 대한 대응이자 나토 확대와 경제 압박에 대한 상징적 공조 차원에서 참석한 것이다. 두 정상의 동반 등장은 유럽을 넘어, 서방 제도에 회의적인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승기념일은 이제 세계 지정학의 리트머스

이제 전승기념일은 더 이상 공동의 기억을 공유하는 날이 아니다. 그것은 지정학적 신호를 보내는 무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나치즘에 맞선 연합국의 단합을 기리는 날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질서의 균열과 권력 재편을 보여주는 날이 되었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유산을 집요하게 붙잡고 있으며, 스스로를 서방 패권에 맞선 최후의 방파제로 묘사한다. 중국은 이 서사를 증폭시킨다. 이념이 아닌, 자국의 전략적 도전을 위한 수단으로서다.

과거조차도 협상의 대상이 된 시대

2025년의 전승기념일은 더 이상 과거를 기억하는 날이 아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기억은 정치화되었고, 동맹은 거래화되었으며, 심지어 과거조차도 협상의 대상이 되었다. 프라하의 조용한 추모에서부터 모스크바의 군사 퍼레이드, 브뤼셀의 통합 축하 행사, 그리고 붉은 광장에 선 시진핑의 모습까지 — 5월 8일과 9일은 이제 세계 질서의 새로운 윤곽을 보여준다.

 

20250509_victory-day-and-the-weaponization-of-memory-geopoliticalfutures-com.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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