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정세메모

세르비아에서 본 낙관적 미래

Report from Serbia by George Friedman / 2025.6.5

1. 처음의 방문과 오해

나는 1970년대 초 처음 세르비아를 방문했다. 당시 나는 그곳이 세르비아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지방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들이 사실상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국가들이라는 점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이 공유하는 유일한 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었다.

 

2. 유고슬라비아의 매력

내가 본 베오그라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는 동유럽의 오래된 도시였다. 나는 그곳에서 내 박사 논문, 즉 뉴레프트(New Left)의 지적 기반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소련의 위성국이 아니었고, 오히려 종종 소련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에 맞선 저항운동의 비범한 지도자였으며 훗날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가 된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는 겉보기에는 뉴레프트 지식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3. 이후의 관심과 비판적 시각

그 후 나는 오랫동안 유고슬라비아를 생각하게 되었고, 티토가 어떻게 그 나라를 유지했는지에 대해 고민했으며, 나토와 발칸 반도에서의 미국의 개입에 관해 (멀리서) 글을 썼다. 나는 그 개입을 그때도 지금도 ‘정신 나간 짓’으로 보았다. 너무도 어처구니없어서 당시 대통령 빌 클린턴의 현실감각마저 의심케 했다.

4. 현재의 세르비아: 놀라운 변화

나는 폭격 전과 후를 포함해 여러 차례 세르비아를 찾았지만, 이번 방문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사라졌고, 모든 이가 영어를 한다. 영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베오그라드는 이제 세계적 수준의 도시로 변모했다.

나는 미국-세르비아 관계 강화를 위해 다양한 협력과 정책을 추진하는 ‘푸핀 이니셔티브(Pupin Initiative)’라는 독립 단체의 초청을 받았다. 설립자이자 전무 이사인 부크 벨레빗(Vuk Velebit)은 나와 아내 메러디스를 위해 이틀간의 일정을 짜주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세르비아 외무장관, 미국 대사대리 등과 만났고, 특히 젊은이들과의 만남이 인상 깊었다. 그들은 내게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의 일과 컴퓨터 화면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미국 기업들이 세르비아에 진출했는데, 이는 마케팅보다는 기술 발전의 미래를 열어가는 고학력의 세르비아 젊은이들을 주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솔직히 말해, 오스틴(텍사스 주)의 내 집을 떠올리게 했다. 한 기업에서 방문 중, 다차원 지리정보를 통합하는 상호작용형 지도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지도 위에서 펼쳐지는 지정학의 세계를 생각하니 무척 흥미로웠다.

5. 세 가지 진실

이번 방문을 통해 나는 세 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세르비아는 발칸에 있지만 국수주의에 얽매이지 않는다. 둘째, 동유럽의 지적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것은 주로 베오그라드에 집중되어 있고, 미국의 기술 기업들이 이를 눈치채고 진출 중이다. 셋째, 발칸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베오그라드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이상하게도 기술과 기업가 정신이 유럽 그 어디보다도 미국적이다.

6. 기억을 대하는 자세

유럽은 기억을 세기에 걸쳐 간직하고 있고, 그 기억들은 대부분 고통스럽다. 이런 기억들은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정도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세르비아에도 나쁜 기억은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처럼, 세르비아인들은 기억을 간직하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7. 동유럽의 지적 힘

동유럽의 지적 힘을 이야기할 때, 나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경험적 근거를 갖고 말한다. 좋든 싫든, 핵무기는 헝가리 출신 과학자들의 도움으로 개발됐다. 전기를 ‘창조’한 세르비아인 니콜라 테슬라는 적어도 토머스 에디슨만큼 위대한 인물이다. 세르비아의 기술 기업을 방문하며, 나는 테슬라와 에디슨의 관계 – 협력과 결별 – 를 자주 떠올렸다. 그 결별의 배경에는 아마도 자존심이 있었을 것이다. 베오그라드에는 미국과 같은 자존심이 있다. 나는 자존심을 창의력의 엔진으로 여긴다. 그리고 베오그라드에는 그것이 분명 존재한다.

8. 지정학적 현실의 재확인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세르비아에서도 지정학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티토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유고슬라비아의 국익을 모스크바에 종속시키지 않았다. 최근 세르비아에는 전쟁을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으려는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최근 러시아는 세르비아가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팔았다고 비난했다. (베오그라드는 제3자에게 판매했으며, 그들이 우크라이나에 팔았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세르비아가 냉전 시절처럼 자기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추구하고 있고, 이는 러시아를 불만스럽게 하지만, 그렇다고 보복할 정도는 아니다. (사실 러시아가 보복할 여력이나 의지도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유럽 대부분에서 영어가 제2외국어로 자리잡았는데, 이는 NATO나 EU 가입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세르비아가 발칸이 아니라 동유럽의 최남단 국가로서 북쪽을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미래는 밝으며, 북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9. 발칸의 현실, 기술로 풀다

지정학은 본래 ‘음울한 과학’이다. 발칸의 역사는 오스만 제국의 정복, 공산주의, 무자비한 중립을 품고 있다. 발칸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의 현실과 한계를 이해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미국의 힘을 폭격 능력에서가 아니라, 기술로 자신들을 ‘강화’시키는 능력에서 느낀다. 발칸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닐지 몰라도, 세르비아만큼은 확실히 그렇다.

10.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세르비아는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라, 미국 기업들이 가져올 ‘가치’를 통해 스스로의 방향을 잡았다. 루마니아처럼 러시아의 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영리하게 관리해왔다. 러시아는 여전히 잠재력을 지닌 강대국이지만, 세르비아는 과거와 티토의 교훈을 토대로 관계를 관리할 자신감이 있다. 이제 세르비아가 필요한 것은 군사동맹이 아니라 상호 상업적 기회를 기반으로 한 미국과의 견고한 관계다. 내 생각에는, 때로 미국 기업들이 국무부보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할 때가 있다. 기술 업계가 세르비아의 잠재력을 이미 알아보고 있고, 국무부도 머지않아 그 흐름을 따라올 것이다.

11. 결론: 조심스런 낙관

나는 원래 낙관적이지 않은 사람이고, 내 직업에서는 낙관이 금기다. 하지만 이번에 본 세르비아는 낙관을 정당화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뉴레프트의 의미를 찾으려 했지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발견했다. 그 후 냉전의 흔적을 찾으려 왔지만, 그 질문들조차 이제는 무의미했다. 여기에서의 지정학은 다른 곳만큼 음울하지 않다.

 

20250605_report-from-serbia-geopoliticalfutures-com.pdf
0.2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