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와 걸프 동맹국들은 자금력을 무기로 앙카라를 견제하려 한다
By: Kamran Bokhari
2025년 6월 5일
동맹국 주도의 지역 안보 전략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동맹과 파트너들이 각자의 지역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중동에서는 이 역할이 주로 두 주요 수니파 강국인 터키(비아랍권)와 사우디아라비아(아랍권)에 맡겨졌다. 이 두 국가는 지금은 같은 편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지정학적 경쟁자이다. 그들의 협력은 양자 관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란의 영향력에도 달려 있다.

시리아에서의 협력과 경쟁
5월 31일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우디 외무장관 파이살 빈 파르한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가 시리아 정부 공무원들의 급여를 공동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리야드와 도하가 시리아를 대신해 세계은행에 1,500만 달러의 부채를 갚은 지 몇 주 뒤였다. 그보다 앞선 5월 24일, 시리아의 아흐메드 알샤라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터키를 깜짝 방문했다. 취임 이후 두 번째로 이뤄진 이번 방문에서, 알샤라는 앙카라와의 “깊은 전략적 협력”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 리야드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과도 회담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 에르도안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양국이 당면한 최대 관심사는 시리아이다. 12월 아사드 정권이 붕괴된 이후 시리아는 지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란은 레반트 지역에서 축출되었지만, 여전히 시리아 동부 국경 너머 이라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을 훨씬 넘어 시리아 남서부에 군사 완충지대를 구축했다. 이란의 향후 역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터키와 사우디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경쟁은 불가피하다.
상호 보완적 역량과 경제적 불안정
사우디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수출국으로 막강한 재정을 보유하지만, 군사력은 부족하다. 반면, 나토에서 두 번째로 큰 상비군과 성장하는 방산산업을 가진 터키는 경제적 불안정, 높은 인플레이션, 통화 가치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느 쪽도 단독으로 중동을 장악할 수 없기에, 단기적으로 전술적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개혁과 변혁의 과정
양국은 국내적으로도 대대적 변화를 겪고 있다. 사우디의 MBS는 사우디를 수니파 이슬람 중 가장 엄격한 형태인 살라피즘의 본산에서 현대 국가로 변모시키려 한다. 그의 ‘비전 2030’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를 다각화하는 목표를 세웠다. 동시에, 미국이 세계적 리스크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사우디가 지역·세계적으로 더 큰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만들고 있다.
터키는 지난 20년간 에르도안 주도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서방 중심의 외교정책을 넘어 아랍 세계, 튀르크계 국가, 이슬람권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에르도안과 그의 정당의 인기가 하락하며, ‘포스트-에르도안’ 시대 터키의 정치체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역사적 앙금: 18세기부터 이어진 경쟁
사우디와 터키의 현대적 경쟁은 18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44년 첫 번째 사우디 국가가 세워지며, 아랍 세계에서 오스만 제국의 가장 심각한 내부 도전이 발생했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1818년 이집트군을 동원해 첫 사우디 국가를 해체했다. 그러나 1824년 사우디는 두 번째 국가를 세웠고, 이는 1891년 오스만의 지원을 받은 아라비아 부족에게 패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623년간 지속된 오스만 제국의 몰락은 사우디가 현대 왕국(세 번째 국가)을 세울 기회를 주었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터키 공화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서로 거의 무관하게 발전했다. 터키는 급진적 세속국가로 (1940년대에는 민주국가로) 서방 세계 일원으로 자처했다. 중동에 대한 관심은 쿠르드 분리주의 문제뿐이었다. 사우디는 극단적으로 종교적인 왕정국가였지만, 1940년대 이후 석유를 수출하며 친서방 노선을 걸었다. 두 나라의 유일한 공통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미소대결에서 미국의 동맹이 된 점뿐이었다.
이슬람주의와의 대결, 그리고 새로운 대립
소련 붕괴 후, 양국은 서로 다른 이슬람주의 도전에 직면했다. 1990년대 사우디는 알카에다와 같은 지하디스트 위협을 받았고, 터키는 무슬림형제단 계열 이슬람주의자들이 1996년 잠시 권력을 잡았다. 이 같은 병행적 변화는 이후 지정학적 충돌의 기반이 되었다.
9·11 테러와 미국의 대응은 양국의 변화를 가속했다. 사우디는 현대화를 시작했고, 터키는 세속주의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과 아랍의 봄은, 터키가 카타르와 함께 이슬람주의 세력을 지원해 영향력을 키울 기회를 줬다. 그러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가 주도한 반(反)이슬람주의 블록은 이들 세력을 진압했다.
경제적 압박과 불안한 화해
터키의 지역적 좌절과 경제난은 아랍 국가들과의 화해를 불러왔다. 이 화해는 공통의 적인 이란의 팽창을 경계하는 상호 이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아랍 지도자들은 터키의 경제적 어려움을 일시적이라 보고, 장기적으로 이란 대신 터키가 중동을 지배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사우디와 걸프국가(특히 UAE)는 경제적 투자와 무역을 통해 터키를 견제하려 한다.
시리아 재건과 미묘한 줄다리기
시리아의 정권 교체는 이 불안정한 협력 관계의 첫 시험대가 되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알샤라가 이슬람주의자이고 터키가 그를 지지한다는 점을 일단 접어두었다. 그들은 터키가 걸프 자금을 필요로 하는 약점을 이용해 시리아 재건에서 앙카라가 패권을 쥐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이 젊은 파트너십이 얼마나 지속될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같은 더 민감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렇듯 터키와 사우디라는 두 축이 미국 중동 전략의 주요 취약지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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