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5일자 「How Hezbollah Controlled Lebanese Shiites」
헤즈볼라는 지금 존재론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글: 힐랄 카샨 (Hilal Khashan)
기원과 성장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탄생했다. 이란은 자국 혁명수비대(IRGC)를 파견해 이스라엘군과 싸우게 했지만, 이들은 대신 바알베크(Baalbek)로 이동해 1985년 공식적으로 헤즈볼라의 창설을 선언했다. 1992년 이스라엘이 당시 지도자 아바스 무사위를 암살한 이후, 헤즈볼라 최고협의회는 하산 나스랄라(Hassan Nasrallah)를 후임으로 선출했다. 나스랄라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아래 헤즈볼라는 레바논 시아파 내에서 지배적인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다. 헤즈볼라는 무장조직, 방대한 관료체계, 공공서비스망(독립적인 금융 부문까지 포함)을 갖춘, 말 그대로 국가 안의 국가로 발전했다.
무장조직으로 얻은 명성
헤즈볼라의 명성은 주로 무장조직에서 나왔다. 이 무장조직은 중견국 군대에 필적하는 효율적 군사 기계로 평가됐다. 그러나 2024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헤즈볼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전쟁 재개를 피하려면 무장을 해제해야 하지만, 무장을 해제하면 정치 조직으로서 존재가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부 지도자들은 군사력을 잃느니 차라리 자살적 전쟁이라도 치르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많은 시아파들도 2024년의 참화를 헤즈볼라 탓으로 돌리면서도 여전히 이 생각을 공유한다.
또 다른 전쟁의 위협
며칠 전 사우디 부외무장관 야지드 빈 파르한(Yazid bin Farhan)이 베이루트로 급파되어 레바논 정부에 헤즈볼라 무장해제 약속 이행을 강력히 촉구했다. 그는 헤즈볼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다시 레바논을 공격할 허가를 받았다고 경고했다. 이후 미국 특사 톰 배럭(Tom Barrack)이 베이루트를 찾아 헤즈볼라 무장해제는 철저히 레바논 내부 문제라며, 미국은 헤즈볼라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무시하면 심각한 결과가 따를 것임을 시사했다.
헤즈볼라를 대표해 미국·사우디와 협상하는 레바논 국회의장 나비 베리(Nabih Berri)는 이스라엘이 최근 전쟁에서 점령한 5개 지역에서 철수하고, 헤즈볼라 요원에 대한 일상적 공격과 기타 침해를 중단하며, 무장해제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레바논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 것을 미국이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워싱턴과의 협상 시도
헤즈볼라는 2000년 독일과 했듯 워싱턴과 협상하길 원한다. 겉으로는 미국과의 협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레바논 내 동맹 세력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와 접촉 채널을 열려 한다. 헤즈볼라는 미국과 협상하면 지역 세력으로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안전 보장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무장해제를 직접 협상과 연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기를 내놓으면 정치적 힘이 사라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일부 핵심 인사들은 무기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헤즈볼라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장해제는 레바논 정부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헤즈볼라의 시간끌기 전략
2024년 이후 무장해제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헤즈볼라는 큰 타격을 입었고, 동맹이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도 전복됐다. 헤즈볼라는 이라크의 인민동원군(PMF)처럼 자국 군대에 통합되어 국가 방위 전략의 일부가 되려 한다. 다만 이스라엘이 남부에서 철수하고 공습을 중단하면 군사 부문 미래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구체적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2000년 남부에서 철수했을 때도 헤즈볼라는 국가 방위 전략 내에서 무기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시간끌기 전략이었다. 결국 내부 합의는 무산됐고, 2008년에는 베이루트를 점거하고 당시 총리 사드 하리리의 수니파 민병대를 해체시켰다.
무기 일부 이양 시나리오
헤즈볼라 측근들은 드론·대전차 미사일 등 중화기를 리타니강 북쪽으로 옮겨 레바논군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한다. 미국은 2025년 9월 말까지 완전 무장해제를 요구하지만, 헤즈볼라 지도부는 일정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휴전 이행을 위한 대통령 조셉 아운(Joseph Aoun)과의 대화에서 헤즈볼라 의회 대표는 무장해제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완전 철수, 암살 중단, 전쟁 피해 복구 프로그램, 전쟁 포로 전원 석방 등을 요구했다. 아운 대통령은 내전 위험을 피하기 위해 내부 종파 균형을 고려하며 무기 문제에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엔 평화유지군(UNIFIL)과의 갈등
헤즈볼라는 오랫동안 UN 평화유지군(UNIFIL)이 자국 활동을 방해한다고 여겨왔다. UNIFIL이 스파이 역할을 하며 이스라엘과 결탁한다고 보고, UN이 철수하길 바라왔다. 그래서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UNIFIL 부대를 자주 공격하며 그들이 원치 않는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2022년 12월 헤즈볼라 조직원은 아일랜드 병사를 살해했지만, 군사법원은 피고가 암환자라며 석방했다. 2007년에는 스페인 병사 6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공격이 있었고, 책임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졌으나 배후는 헤즈볼라와 연계된 세력으로 의심받았다. 최근 이란 항공기의 착륙이 막히자 지지자들은 UNIFIL 차량을 불태우고 요원을 폭행해 현금을 빼앗았다.
시아파 내부의 환멸
지금 다수 시아파는 자신들이 이란의 대리전에서 ‘말’로 이용됐음을 깨닫고 있다. 테헤란의 실패한 지역 패권 야망에 복무한 대가는 혹독했고, 그 과정에서 가치관과 현실 인식은 왜곡됐다. 패배 이후 많은 시아파는 헤즈볼라가 어떻게 자신들을 세뇌시켜 이런 결말로 몰고 왔는지 자문하고 있다.
1980년대 초부터 헤즈볼라는 무력과 선전 선동으로 시아파에게 자신들이 보호자임을 각인시켰다. ‘정치·종교 사회의 최고 지도자(이란의 호메이니, 하메네이)’에 대한 ‘지도자 수호 사상’을 통해 정통성을 부여하고 내부 반대 세력을 소외시켰다. 무장 투쟁은 ‘이슬람 저항(Islamic Resistance)’이라 불리며 신성함과 무적성을 부여받았다. 이를 통해 시아파 사회의 사회·문화 기후까지 헤즈볼라 이념에 맞게 형성해왔다.
헤즈볼라는 시아파 내부에 병원, 학교, 복지·금융기관을 만들어 국가와 평행한 구조를 세웠다. 동시에 치안 조직을 통해 시아파 사회를 감시·통제했다. 공식 기구 외에도 ‘알-아할리(al-Ahali)’라는 비공식 민병대를 두고 총서기의 지시에 따라 시위 진압이나 메시지 전달을 맡겼다.
이런 억압 장치는 공포 분위기와 반대파 탄압으로 시아파 내부에서 이견이 싹틀 틈을 없앴다. 저항자(신의 전쟁 수행자)와 배신자(반대자)라는 이분법을 퍼뜨려 비판을 봉쇄했다. 결국 헤즈볼라는 창립 이래 폭력과 탄압, 제거로 구성원을 통제하며 시아파 사회에 독재 체제를 구축해왔다.
헤즈볼라와 함께 묶인 시아파
가자지구 연대 전선의 참화로 시아파 내부에서도 헤즈볼라 지지 여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살육과 난민화에도 불구하고 다수 시아파는 여전히 헤즈볼라를 지지한다. 아사드 몰락 후 시리아 해안에서의 알라위트 학살과 정치적 소외를 목격한 시아파는 자신들이 생존 위협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
헤즈볼라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다수 시아파는 헤즈볼라가 다시 역량을 복구할 것이라 믿고 따른다. 세속주의자, 무신론자, 실질적 혜택을 못 본 사람들조차 헤즈볼라를 버리면 다른 종파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 생각한다. 시아파에게 헤즈볼라는 결과와 상관없이 ‘필요한 동맹’인 셈이다. 국가는 다시 한 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국제사회의 무장해제 요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더 피비린내 나는 충돌로 치달을 것인가.
헤즈볼라의 소진과 레바논의 선택
현재 헤즈볼라는 전례 없는 소진 상태다. 이스라엘과의 기술 격차는 더 커졌고, 지도부 암살로 안보 인프라는 타격을 입었다. 이란의 재정 지원도 크게 줄어 급여와 보상 지급조차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대체할 만한 시아파 정치 세력이 없어 헤즈볼라는 여전히 국가 내 조직·안보 영향력을 유지한다.
레바논은 9월 말까지 무기 독점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면 대규모 군사 충돌에 직면할 수 있다. 이제 이 문제는 지역·국제 모두의 관심사다. 헤즈볼라는 물러서지 않고, 정부는 강제로 권한을 행사할 역량이 없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레바논 국민, 특히 시아파다. 헤즈볼라는 결국 자신들의 종파적 지지 기반을 무너뜨렸고, 이는 권위주의 아랍 정권들이 자국민을 파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레바논 시아파는 재건까지 몇 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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