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lal Khashan 지음 — 2024년 11월 4일
1. 두 국가 해법의 기원과 이스라엘의 거부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라는 구상은 원래 팔레스타인 측이 제안한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국제적 지지를 점차 얻어왔다. 이 개념은 1970년대 초, 요르단군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요르단에서 축출하고 그 본부를 레바논으로 강제로 이전시킨 뒤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거부했다. 평화 협상과 유엔 결의안 어디에서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 결코 수용될 수 없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이는 요르단강 서안의 젊은 팔레스타인들 사이에서도 (다른 이유로) 공유되고 있다.
2. 이스라엘의 입장
팔레스타인인들이 국가를 가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성경적 시오니즘 내러티브, 즉 ‘이스라엘 땅’이 지중해 해안에서 요르단 계곡까지 — 요단강과 사해를 포함하는 — 영역이라는 종교적·역사적 정의를 흔드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국가 거부는 전략적일 뿐 아니라 원칙적 입장이기도 하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간헐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경우 (예: 2002년 평화 로드맵, 2020년 아브라함 협정 등)도 결국은 더 많은 영토를 병합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 전략’이었다.
이스라엘의 거부는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양보를 얻기 위한 협상술이 아니며, 폭력적 국가 건설 시도에 대한 반작용도 아니다. 또한 팔레스타인의 평화 의지, 무장 투쟁 포기, 이스라엘 국가의 국제적 정당성 확보 등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독립 국가를 부여할 유인이 되지 않는다.
3. 1967년 전쟁의 진정한 원인
이스라엘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7년 6일 전쟁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골란고원, 가자지구,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게 된 계기였다.
이스라엘은 당시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강경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세르는 “이집트가 먼저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지만,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할 경우 대규모로 대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집트는 1965년 미국 린든 존슨 행정부와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요르단만의 티란 해협 봉쇄를 철회하고, 부통령 자카리아 모히에딘을 워싱턴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모히에딘의 방미 10일 전,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단행하면서 6일 전쟁이 발발했다.
4. 전쟁 이후: 점령의 의도
전쟁 직후, 이스라엘 내각의 이갈 알론(Yigal Allon)은 요르단 저지대를 병합해 서안의 팔레스타인인을 요르단과 격리시키고, 유대·사마리아 지역 정착촌 확장을 추진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1964년 창립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파타(Fatah)가 요르단 통치 하의 서안과 이집트가 관리하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주장하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땅의 해방’을 명분으로 이러한 점령을 정당화했다.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은 전쟁 직전 이스라엘의 의도를 알고 있었으며, 이집트와 방위조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서안을 ‘짐’으로 여겨 쉽게 포기했다. 그는 거의 저항 없이 군을 철수시켰다.
이스라엘은 단순히 안보 목적에서 서안을 점령하고 정착촌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지역 안정 이후 이를 팔레스타인에 반환해 국가를 세우려는 의도도 없었다. 오히려 서안을 ‘이스라엘의 일부’로 통합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점은 다비드 벤구리온이 1956년에 “요르단은 존재할 권리가 없으며, 서안은 이스라엘의 자치구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5. 국가 건설과 평화협상의 허상
팔레스타인과의 직접 또는 간접 협상 중 어떤 경우도 현실적인 의미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슬로 협정에서도 서안과 가자지구는 ‘분쟁지역(disputed lands)’으로 다뤄졌을 뿐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평화 프로세스를 유엔 안보리 결의 242호와 338호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들 결의안은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고 1967년 전쟁에 참가한 ‘아랍 국가들’만을 다뤘다.
1994년 오슬로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가 출범했으나, 이스라엘은 그 어떤 토지·수자원·영공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권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National(국가)’이라는 단어가 ‘고국(homeland)’을 함의한다는 이유로 이 명칭 자체를 거부하고, ‘Palestinian Authority(팔레스타인 자치기구)’만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서안·가자 주민들의 여권에도 ‘Palestinian Authority’라는 명칭만이 표기된다.
6. 이스라엘이 두 번 제시한 조건부 국가안
이스라엘은 단 두 차례, 매우 까다로운 조건 아래에서만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언급했다.
첫 번째는 2002년 ‘평화 로드맵’(Roadmap for Peace) 제안 때였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 가능성을 언급했고, 미국·EU·유엔·러시아로 구성된 ‘국제 4자 협의체(Quartet)’가 정착촌 확산 속에서 협상 재개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아리엘 샤론 총리는 협상 유보, 정착촌 철거 불가 등 14가지 조건을 내걸어 계획을 무산시켰다.
두 번째는 **트럼프 행정부 중재로 체결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이었다. 문서상 팔레스타인 국가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10가지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요르단 계곡·북부 서안·예루살렘 동부의 이스라엘 영토 편입, 서안 전체에 대한 이스라엘 안보 주권 인정 등이 포함되었다. 팔레스타인이 이를 수용해야만 협상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7. 상처 입은 이스라엘 여론
텔아비브 국립안보연구소(INSS)가 2024년 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 유대인 응답자의 63%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에 반대했다.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 사회에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으며, 평화공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켰다.
정치적으로도 분열과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대부분은 네타냐후를 ‘가장 적합한 지도자’로 보지만 동시에 부패하고 실패한 인물로 평가했다. 조사에서 그를 지지한 응답자는 28%에 불과했다.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등장한다면 ‘팔레스타인 국가 없는 평화’에는 동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2024년 7월,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요르단강 서쪽에서의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결의안을 대다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는 노르웨이·아일랜드·스페인·슬로베니아·아르메니아 등 5개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한 직후였다.
이 결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나 그에 이르는 협상 자체를 거부한다는 명확한 신호였다.
8. 팔레스타인 청년 세대의 회의
한편, 팔레스타인 청년층은 라말라에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정부를 권위주의적이며 부패한 집단, 그리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세력으로 평가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된다 해도 지역 단절과 부패 탓에 실패할 것이라 보고, 그나마 최선의 경우에도 미 원주민 보호구역(Native American-style reservation) 같은 형태가 될 것이라고 비관한다.
오슬로 협정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9. 결론 — 상처받은 두 민족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깊이 상처받은 민족이다.
양측 모두 정치적 분열과 비인기 지도자들로 인해 진정한 평화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대중적 지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과거를 넘어서서 새 길로 나아간다”는 말은 아직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다.

'세계정세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지 프리드먼이 질문에 답하다: 트펌프의 가자 평화계획, 역사속 지도자들 (0) | 2025.10.04 |
|---|---|
| 일일 메모: 독일의 국방 개혁 (0) | 2025.10.04 |
| 데일리 메모: 러시아 미사일과 우크라이나 드론 (0) | 2025.10.02 |
| 가자지구 평화안의 가장 중요한 쟁점 (0) | 2025.10.02 |
| Daily Memo: 하마스에 대한 압박이 고조되다 (0) | 2025.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