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카므란 복하리 (Kamran Bokhari)
게재일: 2025년 10월 9일
1. 미중 경쟁 속의 독특한 위치
심화되는 미·중 경쟁 가운데, 파키스탄은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와 깊고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키스탄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중국과의 일정한 타협을 필요로 하는 상황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중국이 계속해서 군사적으로 미국에 도전한다면,
이 균형 전략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2. 미국과의 새로운 항만 프로젝트 제안
10월 3일자 파이낸셜 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 아심 무니르 원수의 보좌관들이
미국 측에 아라비아해에 신항만 건설 및 운영 협력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파키스탄 남서부 해안 도시 파스니(Pasni)를
핵심 광물 수출 터미널로 전환하려는 구상이다.
해당 항만은 내륙 자원지대와 철도로 연결되며,
총 12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한 보좌관은 이 계획을 “중국으로부터의 다변화(diversification)” 전략으로 설명하면서
“해당 지역은 과다르 항만(Gwadar) 양허 범위 밖이므로
중국과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3. 미국-파키스탄 관계의 불신의 역사
미국이 이 제안을 수용할지는 불확실하다.
이는 파키스탄의 광물 매장 가치에 달려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는 명확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미·파 관계는 9·11 이후의 전쟁에서 비롯된 전략적 불신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파키스탄은 형식상 미국의 비(非)나토 주요 동맹국이었고
안보 원조를 받았지만,
아프가니스탄 관리 및 인도 견제라는 미국의 목표와
파키스탄의 지역 전략은 충돌했다.
미국의 아프간 재건 및 반테러 캠페인은
파키스탄을 구조적 딜레마에 빠뜨렸다.
즉, 미국의 기대를 완전히 충족할 수도,
탈레반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드론 공격, 일방적 군사행동,
그리고 파키스탄 내부의 격렬한 탈레반 반란이 지속되면서,
양국 관계는 전술적 협력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4. 미국-인도 관계 강화와 파키스탄의 위기감
이 시기 동안 미국과 인도의 관계는
전략적 목표의 일치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워싱턴은 지정학·경제·기술 영역에서 포괄적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양국은 방산무역·정보공유·합동훈련을 제도화했으며
우주·사이버·첨단기술 협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미국은 인도를 중국 견제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은 동쪽(인도)과 서쪽(아프간) 모두에서
전략적 포위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5. 중국으로의 전략적 전환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슬라마바드는 중국과의 협력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은 파키스탄 안보를 보장하고,
지역 영향력을 유지하며,
미국과의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파트너로 인식되었다.
이 전략적 전환의 상징은
2010년대 출범한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이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BRI) 핵심 프로젝트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고속도로·철도·에너지 인프라를 통해
중국 서부와 파키스탄의 인도양 연안을 연결했다.
20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중국은 파키스탄 **방위 조달의 약 81%**를 공급하는
최대 무기 공급국으로 부상했다.
6. 남아시아의 독특한 역학 구조
이러한 남아시아의 역학은
4개국(미국·중국·인도·파키스탄)의 역사적 경로와 제약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냉전 시기 인도는 명목상 비동맹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소련과 긴밀히 협력해
중국·파키스탄을 견제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미국 주도의 안보체제(세아토·센토)**를 통해
수십 년간 협력했으며,
1980년대 아프간 전쟁에서도 미국과 함께 소련에 맞섰다.
흥미롭게도 파키스탄은
이런 과정에서도 미국과 중국 모두와 실질적 관계를 유지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했다.
7. 1971년 미중 관계 정상화의 숨은 조력자
1971년 파키스탄은
미국과 중국의 화해(rapprochement) 과정에서 핵심 중재자 역할을 했다.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 **야히야 칸(Yahya Khan)**은
닉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비밀 외교 경로를 제공했다.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파키스탄에서 “병가”를 핑계로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비행,
이후 닉슨의 역사적 중국 방문을 이끌었다.
이 사건은 파키스탄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으며,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로부터 신뢰받는 중개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8. 냉전 논리와 오늘의 현실
당시 파키스탄이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냉전의 전략적 논리가 있었다.
그 시기 중국은 오늘날처럼 강력한 세력이 아니었고,
미국의 주요 적수는 소련이었다.
중소 분열, 특히 1969년 **우수리강 충돌(Ussuri River clashes)**은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워싱턴은 파키스탄을 중국과의 외교적 가교로 삼아
3자 전략(triangular diplomacy)을 추진할 수 있었다.
9. 균형 외교의 근거: 취약성의 역설
이후 미중 관계 정상화와 투자·기술 협력 확대는
파키스탄이 두 강대국 모두와
생산적 관계를 유지하도록 도왔다.
오랫동안 이슬라마바드는
워싱턴을 보다 중요한 전략 파트너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미·파 관계 악화 속에서도
파키스탄은 두 세력 사이에서
전략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왔다.
이 미묘한 줄타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파키스탄의 구조적 취약성 —
즉, 경제적 불안정, 정치적 불확실성, 안보 의존성 — 덕분이었다.
이 취약성이 파키스탄을
워싱턴과 베이징 모두에 의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 현 시점의 지정학적 의미
워싱턴과 베이징은 서로를 향한 파키스탄의 관계를
즉각적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은
지역 동맹 자율성 강화를 중시하는 전략을 펼치며,
파키스탄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혔다.
또한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전면적 충돌이 아닌 경제적 경쟁의 틀에서
관리하려는 노력 역시
이슬라마바드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는 미국의 대중 전략에서
인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파키스탄에게
인도와의 경쟁 및 4자 구도 내 입지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11. 새로운 중재자 가능성
따라서 파키스탄은 다시금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일부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
냉전 시절처럼 완전한 조정자는 아니지만,
역사적 경험과 외교적 유연성을 활용해
제한적이나마 중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냉전보다 훨씬 복잡하다.
서로 경제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전략적으로는 대립하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파키스탄의 외교적 공간은 좁다.
특히 **중국의 군사적 공세성(military assertiveness)**은
미국이 무역·기술 협력에서
실용적 접근을 취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25년 5월,
파키스탄이 인도와의 87시간 충돌에서
중국산 무기체계를 사용한 것은
이 균형 전략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파키스탄의 줄타기는
미국과 중국이 직접 충돌하지 않는 한
유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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