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Friedman / 「The European Crisis: Origin and Future」/ 2025년 12월 15일
전후 질서에 대한 오해와 균열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누적되어 온 근본적 긴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지정학적 체제가 영구적일 것이라는 미국과 유럽 간의 암묵적 이해였다. 이번 국가안보전략은 사실상 이 지정학적 관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그 결과 유럽에는 미국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 위기의 출발점이다.
유럽 대륙은 미국의 안보 보장이 국제정치의 항구적 특징일 것이라 가정한 나머지, 스스로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안보 보장
미국의 안보 보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1945년 이후 소련은 동유럽을 점령하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으며, 미국과 영국은 서유럽을 점령해 다양한 민주적 체제를 형성했다. 이 분단 구조는 서유럽을 소련의 군사 행동에 극도로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념과 전략: 미국이 개입한 이유
미국은 소련이 서유럽을 장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는 이념적 이유도 있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이유였다. 알프레드 세이어 머핸(Alfred Thayer Mahan)이 설득력 있게 주장했듯, 미국 국가안보의 핵심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제해권 장악이었다. 미국은 서반구에서 군사적 위협을 받지 않았고, 유일한 위협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계기는 독일 잠수함이 루시타니아호를 격침시킨 사건이었다. 이는 감정적 충격이었을 뿐 아니라, 독일이 대서양에서 제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영국 해군은 이미 대서양을 통제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무역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반면 독일의 해양 전략이 성공했다면, 미국은 독일이 자유무역을 허용할 것이라 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이 미국을 참전으로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렌드리스(Lend-Lease)
제2차 세계대전은 여러 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연속이었다. 만약 독일이 영국을 패배시켰다면, 독일 해군은 영국의 해군 자산을 확보해 대서양을 인질로 잡을 수 있었고, 심지어 미국 본토 침공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가 렌드리스 법안의 배경이었다. 미국은 전쟁에 직접 참전하지 않는 대신 영국을 무장시켜 독일을 저지하고, 대서양 제해권을 유지하도록 도왔다. 결정적으로, 렌드리스에는 비밀 보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영국이 패배 직전에 몰릴 경우, 영국 해군은 독일에 넘어가지 않고 캐나다로 이동해 미국을 방어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주만 이후: 두 대양의 전쟁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은 태평양 지배를 노렸고, 이튿날 독일은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두 대양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러야 했다. 바다는 더 이상 미국을 자동으로 보호해주는 장벽이 아니었고, 제해권은 전략적 필수 요소가 되었다.
냉전의 전략적 기초
이 인식은 냉전기의 미국 전략을 형성했다. 미국은 두 대양 모두를 지배할 수 있는 군사력을 상시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서유럽을 소련이 점령한다면, 소련은 대서양 연안 항구를 확보하게 되고, 해군력을 갖출 경우 미국은 또 하나의 실존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소련의 서유럽 진출을 막는 것은 미국의 근본적 전략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유럽 방위는 도덕적·이념적·전략적 프로젝트가 되었다. 핵전쟁은 상호확증파괴(MAD)로 억제되었지만, 재래식 전쟁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했다. 유럽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대서양 제해권을 놓고 해전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이로 인해 미국은 NATO와 같은 집단 안보 체제를 적극 육성했고, 서유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며 경제적 재건을 지원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지속된 질서
이 질서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침공은 러시아의 실패로 끝났고, 러시아군의 군사적 노후성이 드러났다. 미국의 관점에서 이는 러시아가 더 이상 중대한 위협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럽에 대한 미국의 안보 보장 역시 구식이 된다. 요컨대, 냉전은 우크라이나에서 진정으로 종결되었다.
경제적 현실과 방위 의지의 부재
1945년과 달리, 오늘날 유럽은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다. 2024년 기준 유럽연합(EU)의 GDP는 약 19조 달러로, 중국보다도 크다. 그럼에도 방위비 지출을 꺼리는 것은 미국 안보 보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유럽을 영구히 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유럽’이라는 실체의 부재
문제는 ‘유럽’이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U는 27개의 주권 국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문화·역사적 불신이 서로 다르다. “유럽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유럽이 단일한 의사결정 주체라는 잘못된 전제를 담고 있다. 실제로 유럽은 단지 대륙일 뿐이며, 서로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이 될 수 있는 국가들의 집합이다.
통합의 한계와 선택
이들 국가는 단일 국가로 통합될 필요가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하다. 중앙정부와 통합 군대를 갖춘 국가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유럽은 본질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남는다. 만약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유럽은 세계 2위 규모의 경제와 러시아를 충분히 억제할 군사력을 갖출 수 있다.
EU의 선택과 현재의 위기
유럽의 해답은 EU라는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군사 동맹과는 분리된 구조였다. 현재 유럽은 스스로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유하지만 약한’ 존재로 남는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도 존재했던 선택이었고, 유럽은 80년간 이를 회피해 왔다.
미국의 이탈과 유럽의 미래
미국은 두 차례의 유럽 전쟁과 냉전에서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이제 미국의 이해관계가 변하면서 유럽에서의 이탈은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유럽으로 하여금 통합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다. 동맹은 선택적이지만, 통합된 국가는 훨씬 견고하다. 유럽은 이제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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