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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메모

이슬람 공화국의 일식(日蝕)

(The Eclipse of the Islamic Republic)
저자: 힐랄 카샨(Hilal Khashan)
2026년 3월 10일


1. 전쟁과 “무조건 항복” 요구

지난주 미국 대통령 **Donald Trump**은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 공동 군사작전을 끝내기 위해 이란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이란인들에게 이러한 조건은, 특히 트럼프가 초기에 이라크에서 쿠르드 세력이 이란으로 침투하는 것을 지지한 발언과 함께, 오랜 역사 속에서 겪어 온 국가적 굴욕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에 대해 이란 대통령 **Masoud Pezeshkian**은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
이라고 대응했다.


2. 전쟁 명분 논쟁

트럼프는 전쟁 결정을 “미국 국민에 대한 임박한 위협” 때문이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오만의 중재를 통해 이란은 전례 없는 양보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됐다.

  • 우라늄 농축을 3.67% 이하로 제한
  •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허용
  • 농축 우라늄 비축 중단

반면 이스라엘 총리 **Benjamin Netanyahu**는 이번 분쟁을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힘을 확립할 기회로 보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목표는 단순히 이란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정권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3. 이란 내부의 복잡한 여론

이란 내부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정권은 일정한 핵심 지지층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인기가 낮다.

대부분의 이란인들은 다음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 정권에 대한 혐오
  •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의도에 대한 불신

많은 이란인들은 현재 상황을 미국이 이란의 자원을 지배하고 중국의 경제·기술 부상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해석한다.

따라서 설령 테헤란 정권이 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이란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며 회복 과정은 길고 험난할 것이다.


4. 굴욕의 역사

이란 국민은 현재 상황을 수세기에 걸쳐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온 역사적 굴욕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부상했을 당시 페르시아는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극도로 약화된 상태였다.

당시 **사산 제국(Sasanian Empire)**은 동로마 제국과의 장기간 전쟁으로 국력을 소진했다.
628년 샤 호스로 2세(Khosrow II) 처형 이후 내부 정치도 급속히 붕괴했다.

이 틈을 이용해 아랍 무슬림 군대가 633년 침공을 시작했고

  • 636년 카디시야 전투
  • 642년 나하반드 전투

이후 페르시아는 아랍 세력에 정복되었다.


5. 페르시아 민족주의의 반응

페르시아인들은 아랍 정복을 강하게 거부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이슬람과 베두인 문화가 페르시아 문명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상가 Mirza Aqa Khan Kermani(1854–1897)는 이슬람을

사막에서 맨발로 다니며 도마뱀을 먹던 사람들이 고귀한 아리아 민족에게 강요한 낯선 종교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979년 혁명 이후 이란의 정책, 특히 중동에서 혼란을 확산시키고 아랍 국가들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은 이러한 우월 의식의 일부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6. 19~20세기의 굴욕

1828년 이란은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패배 후 투르크멘차이 조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 예레반
  • 나흐치반

을 러시아에 할양해야 했으며, 배상금 지급과 경제 특권도 부여했다.

1856년에는 영국군이 카르그 섬부셰르 항구를 점령했다. 이는 이란이 아프가니스탄 헤라트를 점령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또 다른 굴욕은 1953년 CIA가 지원한 쿠데타였다.

이 작전(일명 Operation Ajax)으로 Mohammad Mosaddegh 정부가 전복되고 샤가 복귀했다.


7. 트럼프 발언이 불러온 역사적 기억

트럼프가 이란 침공을 언급하며 이라크의 쿠르드 세력이 이란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기억을 다시 자극했다.

그는 나중에

쿠르드인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며 발언을 수정했다.


8. 이란 정치체제의 복잡성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이란 정권의 구조와 생존 능력을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네타냐후는 이란 국민에게

지금이 정권을 전복할 일생일대의 기회
라고 호소했다.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Ali Khamenei 제거를 지역 불안정의 설계자를 제거한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지난 47년 동안

  • 전쟁
  • 경제 제재
  • 봉쇄
  • 내부 불만

을 모두 견디며 적응 능력을 발전시켰다.


9. 코메이니가 만든 권력 구조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Ruhollah Khomeini**는

  • 종교
  • 군사
  • 정보기관

이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한 제도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 구조는 정권의 회복력과 지속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10. 권력기관의 중첩 구조

이란 정치 시스템의 특징은 권력기관의 권한이 서로 겹친다는 점이다.

주요 기관:

  • 수호위원회 (Guardian Council)
  • 전문가회의 (Assembly of Experts)
  • 국가이익판단위원회 (Expediency Discernment Council)

이 구조는 협상과 타협을 가능하게 하지만 향후 권력 충돌의 위험도 존재한다.


11. 전쟁 이전부터 존재했던 위기

미·이스라엘 작전 이전부터 이란은 이미 큰 압력을 받고 있었다.

주요 원인

  • 경제 제재
  • 이스라엘의 대리세력 약화 작전
  • 청년·여성 중심 내부 시위

이 때문에 이란은 1979년 이후 가장 큰 내부 압력을 경험했다.


12. 이스라엘의 장기적 작전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이란을 상대로

  • 사이버 공격
  • 핵시설 파괴
  • 과학자 암살
  • 혁명수비대 침투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해 왔다.

이 정보 활동은 결국 미국이 외교 대신 군사 행동을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데 기여했다.


13. 이란의 군사 대응

이란은 다음 지역을 공격했다.

  • 요르단 미군 기지
  • 이라크 미군 기지
  • 걸프 지역 미군 기지
  • 이스라엘 군사 시설

이로 인해

  • 걸프 지역 항공로 폐쇄
  • 에너지 시장 급변
  • 호르무즈 해협 보험료 급등

이 발생했다.


14. 중동 권력 균형의 붕괴

걸프 국가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충돌에 휘말렸다.

이 지역이 수년간 구축했던 균형은 다음과 같은 전략이었다.

  • 미국과의 안보 협력
  • 이란과의 제한적 관계 개선

그러나 현재 그 균형은 붕괴했다.

그 결과

  • 이란 전략적 붕괴
  • 이스라엘의 지역 패권 강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15. 정권 붕괴가 곧 안정은 아니다

만약 이란 정권이 붕괴하더라도 안정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예:

  • 이라크
  • 예멘
  • 리비아
  • 아프가니스탄
  • 시리아

이들 국가에서 정권 붕괴 이후

  • 내전
  • 난민
  • 무장세력 확산

이 발생했다.

이란은 9천만 명 인구와 복잡한 민족 구조를 가진 국가이기 때문에 파급 효과는 훨씬 클 수 있다.


16. 최고지도자 제거의 영향

최고지도자 제거는 정권 약화를 가속할 수 있지만 즉각적인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

  • 강한 이란 민족주의
  • 강력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일부 시민은 하메네이 사망을 축하했지만 다른 시민들은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17. 경제 붕괴와 시위

최근 시위의 직접적 원인은 통화 가치 붕괴였다.

이는

  • 경제가 더 이상 압력을 견디기 어렵고
  • 정부가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함

을 보여준다.


18. 강력한 탄압 가능성

만약 반정부 시위가 확대되면 정부의 탄압은 훨씬 더 폭력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란 정부는

  • 하메네이 애도 집회
  • 반미·반이스라엘 시위

를 조직해 지지층을 동원하고 있다.

일부 의원은

전쟁 중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면 시위대를 모두 죽일 것

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현재 여러 도시에는 야간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19. 정권이 살아남더라도 이전과 같지 않을 이란

정권이 살아남더라도 이란은 전쟁 이전과 같은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란은 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다시 찾아야 하며 국민들도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

1979년 혁명은

  • **Mohammad Reza Pahlavi**의 억압 체제
  • 제국적 사고

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결국 **Ruhollah Khomeini**가 혁명을 장악해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다.


20. 마지막 결론

현재 정권이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지배 엘리트에게 승리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 이란 사회의 변화 요구
  • 자유와 존엄한 삶에 대한 열망

이 이미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20260310_the-eclipse-of-the-islamic-republic-geopoliticalfutures-com.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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