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님이 강진으로 귀양을 와
주막 행랑채에 살면서 몸과 마음을
다잡고자 이름 붙인 사의재
다산 정약용(1762~1836)은 1801년 강진으로 유배됐다. 다산이 강진에서 머물렀던 첫 거처를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라 부른다. 동문 밖 밥파는 집, 즉 주막이다. 다산이 강진에 나타나자 다들 “대역죄인이 왔다”며 줄행랑쳤지만, 주모만이 그를 받아줬다. 다산은 제가 먹고 자던 주막집 행랑채를 ‘사의재(四宜齋)’라 불렀다. 생각·용모·언어·동작 네 가지를 반듯이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다산은 이 행랑채에서 4년을 살았다.
인생의 어려운 고비에 지난 날 어떻게
살아왔으며 남은 날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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