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4일자 기사 「The Myth of Saudi Political Stability」
새롭게 부상한 온라인 반대운동은 사우디 국민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작성자: Hilal Khashan
사우디 지도자들은 자국을 격동의 지역에서 ‘안정의 오아시스’로 자주 묘사하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1950년대 초 이래 사우디는 여러 차례의 시위, 정치 폭력, 쿠데타 실패와 왕실 숙청을 겪었다. 최근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의 정책을 겨냥한 새로운 소셜미디어 운동, ‘자유 가면남(FMM: Free Masked Men)’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FMM은 불과 2주 전 소셜미디어에서 출범했다. 이들은 수도 리야드와 이슬람 발상지 메카 등 사우디 전역에서 활동 중이며, 서유럽과 북미에 거주하는 사우디 망명자, 심지어 왕족 출신 탈영자들에게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기존의 반대운동과 다른 점은 FMM이 잔혹한 국가 탄압기구와의 직접적 충돌을 피한다는 점이다. FMM은 MBS의 논란 많은 정책에 맞서기 위해 SNS를 중심으로 여론을 조성하고 향후 계획을 모색 중이다. 이 글은 과거 사우디의 반대운동 및 정치 폭력의 맥락에서 FMM을 살펴본다.
반대운동의 역사
수십 년 동안 사우디는 여러 차례 반대운동과 체제 도전을 목격했다. 1950년대 초, 시아파가 다수를 이루는 동부 주(州)의 아람코(Arab-American Oil Company) 노동자들 사이에서 개혁 요구가 분출했다. 1952년 아람코 노동자들은 노조위원회를 결성했고, 다음 해에는 노동조건 개선, 노조권 보장, 임금 인상, 현지 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 철폐, 직원용 주택 및 교통비 지급, 아람코 학교에서 아랍어 교육 등을 요구했다.
1956년에는 정치개혁까지 요구하며 중앙노동자위원회가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들은 헌법 제정, 정당·국가조직의 합법화, 노조 조직권 보장, 파업금지 왕명 철폐, 아람코의 내정간섭 중단을 요구했다. 정부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무력으로 운동을 진압하고 수백 명을 체포·고문했으며, 많은 이들에게 장기형을 선고했다.
1950년대 후반, 사우드 국왕과 당시 왕세자 파이살 간 권력분립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다. 이를 계기로 ‘나지드 왕자들’은 행정부 권한을 각료회의에 이양하라는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갈등이 심화되자 이들은 이집트로 망명했고, 이집트 언론은 이들을 ‘자유 왕자들’로 불렀다. 이후 파이살이 1964년 사우드를 축출한 뒤 이들을 사면했고, 자유 왕자들은 귀국했다.
1969년에는 사우디 공군 고위 장교들이 군주제를 타도하고 ‘아라비아 반도 공화국’ 수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수백 명이 체포됐다. 파이살 국왕은 주동자들을 처형했으나, 하급 장교와 사병들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 때, 파흐드 국왕은 미군을 사우디에 초청해 쿠웨이트 해방을 지원받았다. 이는 ‘이교도 군대가 무슬림을 대신해 싸운다’며 사우디 이슬람주의자들의 분노를 샀다. 사흐와(Sahwa) 운동의 성직자들은 정치개혁과 외국군 철수를 요구했으나, 파흐드 국왕은 이를 거부하고 지도자들을 탄압했다. 이는 정치 폭력과 사우디 내 미국 이익시설 공격으로 이어졌다.
9·11 이후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내 알카에다 지부를 설립했고, 2003년부터 연쇄 테러를 자행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는 2005년까지 이를 진압했지만, 2015년 살만 국왕이 왕세자를 교체하면서 나예프를 해임했다. 2017년에는 나예프를 포함한 왕족, 기업인, 활동가들이 대규모 숙청으로 체포됐다. 이듬해에는 사우디 영사관에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암살됐다.
FMM의 불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6,0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것은 많은 사우디인들에게 부패와 착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또한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아사드 정권이 13년간의 전쟁 끝에 결국 무너진 것은 사우디 청년들에게 변화를 향한 영감을 주었다.
공권력의 혹독한 탄압을 잘 아는 FMM은 직접 충돌을 피하고 온라인에서 메시지를 전하며, 밤에는 벽에 낙서를 남기기도 한다. 이들은 생활수준 악화, 정부 지원 콘서트와 소란스러운 나이트클럽을 비판하며, MBS가 국가 재정을 유용하고, 통치를 잘못하며, 국민의 존엄을 짓밟고,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특정 정당이나 종교·종파 운동과는 무관하다며,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가 범죄인’ 나라에서 억눌린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밝히고 있다.
출범 선언문에서 FMM은 수십 명의 학자·지식인·활동가 체포, 반대의견 억압, 과도한 세금과 보조금 삭감, 초대형 사업에 낭비되는 자금 등으로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다고 주장했다. 부패는 단지 부정과 억압, 재산 약탈에 그치지 않고, 이슬람 법 원칙을 무시하고 왜곡하며, 국민에게 반(反)이슬람적 가치관을 강요한다고도 비판한다.
MBS의 ‘문화 개혁’ 정책은 도덕적 타락과 전통·종교적 경건의 파괴로 보며, 국가 운영의 불투명성, 권력 독점, 왕실과 전통적 기관에 대한 탄압,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등의 이슈도 다룬다. 일부 알사우드 왕자들이 이 운동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내비친다.
억압적 통제와 사회경제적 불만
사우디 정부는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을 엄격히 검열하며, 경제정책으로 국민에게 세금·수수료를 부과하고 물가를 올렸다. FMM은 MBS가 석유 부국인 사우디를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네옴(NEOM) 같은 과잉 사업과 대규모 무기 계약으로 국가부채는 3,000억 달러를 넘겼으며, 그 결과 서민들은 실업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FMM은 폭력을 추구하지 않는다며, ‘군사화된 삶’과 ‘개혁이라는 이름의 폭정’을 끝내고, 경직된 정치체제를 평화적으로 변화시키려 한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FMM 관련 벽낙서가 나타나면서, 이 운동이 외부세력이 아닌 국내에서 자생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단순한 일시적 움직임이 아니라 사우디 사회 내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민중적 각성의 시작일 수 있다.
지지 기반의 확산
1932년 이븐 사우드가 사우디를 건국한 이후 처음으로, 다양한 사회계층이 국가 발전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다. FMM이 주도하는 디지털 반란은 폭정에 저항하고 평화적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집단의식을 드러낸다. SNS에서 분노의 메시지가 퍼지면서, 억압정책과 사회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민 불만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잘 보여준다.
MBS는 도시 빈민가로 전락한 지역으로 이주한 베두인들을 소외시키고, 경제개혁으로 인해 많은 사업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다 역시 왕국의 경제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또한 MBS는 자신의 권좌를 위협할 수 있는 왕자들을 배제해왔으며, 망명을 통해 재산을 지키려는 왕족들은 이미 떠났다. 왕족들이 망명지에서 결집할까 우려해, 현재는 해외여행조차 국가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위험한 도전
지금 사우디에서 벌어지는 것은 MBS 체제에 대한 ‘조용한 반란’이다. 가면을 쓴 개인들이 외치는 정의와 자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분노와 결합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우디처럼 반대자들을 가차 없이 투옥·암살·재판 없이 처형하는 나라에서, FMM 지지자들에게는 큰 위험이 따른다.
보안군은 이미 이 운동을 억누르려 하고 있으며, 사우디 언론과 와하비 성직자들은 FMM을 비판한다. 국영언론은 카타르와 무슬림형제단이 배후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주 동안 전국 도시들에서 대규모 체포와 강화된 치안이 이어졌다. 와하비 성직자들은 사우디 정권에 대한 반란을 금지하는 파트와(종교령)도 발행했다.
사우디 현지 보고에 따르면, 보안당국은 사실상 비상경계 상태에 들어갔다. 정권은 정치·치안적 억압을 강화해 수천 명의 활동가, 설교자, 지식인을 체포했고, 심지어 공인 종교기관 관계자들까지 탄압 대상으로 삼았다.
FMM은 망명자가 아닌 ‘국내 출신’ 운동으로, 침묵하던 사우디 사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로써 국민적 동원을 이끌 잠재적 토대를 마련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아랍 독재자들이 국민과의 화해 대신 나라를 파괴해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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