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미·러 협상의 지리적 범위를 확대하고 싶어 한다
에카테리나 졸로토바(Ekaterina Zolotova)
■ 미국의 베네수엘라 인근 군사 행동과 마두로의 반응
8월 말, 미국과 러시아 간 우크라이나 전쟁 해결 협상이 결렬된 직후, 워싱턴은 마약 밀매와 초국가 범죄 조직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의 확고한 동맹국인 베네수엘라에 해군 전력을 배치했다. 이어 9월 초에는 같은 이유로 푸에르토리코의 옛 루스벨트 로즈 해군 기지에 F-35 스텔스 전투기 5대를 전개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이를 ‘공개적 침략’으로 규정하며 대규모 방위 동원령을 내리고, 2만5천 명의 병력을 콜롬비아 국경과 카리브해·대서양 연안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 베네수엘라 지지자들의 요구와 러시아의 침묵
베네수엘라 상황에 동조하는 이들은 BRICS, 특히 러시아가 미국의 카리브해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러시아가 과거처럼 Tu-160 전략 폭격기를 보내 미국의 개입을 억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평소 남미 자산을 활용해 미국을 자극하던 러시아는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조용하다.
■ 전략적 거점으로서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지리적으로 미국의 ‘아랫배’에 위치하고, 카리브해 접근성을 갖추어 모스크바가 워싱턴을 압박하기 좋은 카드다. 2024년에도 러시아 북방함대 소속 해군 타격전단이 베네수엘라의 라과이라 항에 입항하며 “언제든 미국의 뒤뜰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경고성 시위를 벌였다.
■ 군사·에너지 협력의 역사적 배경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와 깊은 군사·에너지 협력 관계를 구축해왔다. 2005년 이후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최대 라틴아메리카 군사기술 협력 파트너였다. 러시아는 무기 수출 시장으로서 베네수엘라를 중시했고, 7월에는 국영 로소보로넥스포르트(Rosoboronexport)가 베네수엘라 내 AK 소총용 연간 7천만 발 탄약 생산 공장의 1단계 공사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카라카스는 압하지야·남오세티야의 독립과 크림반도 주민투표 결과를 승인해 러시아의 외교적 무기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러시아는 쿠바 등 카리브해 동맹국으로 석유를 운송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자원에 관심을 가져왔다. 냉전기에는 카라카스가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고, 소련이 동유럽에 같은 양의 석유를 보내 운송 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방식으로 무역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 협력은 미국의 대베네수엘라 제재가 강화된 2019~2020년 이후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제재 회피와 석유 파트너십 유지
2020년 3월, 로스네프트(Rosneft)는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관련 자산을 국영기업 로스자루베즈네프트(Roszarubezhneft)에 넘겼지만, 이는 사실상 국가의 석유 이해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형식적 조치였다. 이후 또 다른 러시아 기반 회사 페트로모스트(Petromost)로의 자산 이전 계획도 있었다. 러시아는 여전히 OPEC+ 체제에서 생산량 조절을 통해 원유 시장을 관리하려는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 서방의 추가 제재 논의와 베네수엘라의 잠재적 이익
서방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새로운 제재 패키지와 가격 상한제를 논의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기에 끝나지 않는다면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압박해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유럽에 석유를 판매함으로써 오히려 이익을 얻고 에너지 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기업들이 이미 이를 검토하고 있다.
■ 러시아의 전략: 공개적 충돌 대신 조용한 지원
러시아로서는 베네수엘라가 미국 편으로 돌아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극 세계질서를 강조하며 제한된 동맹을 지키려는 러시아는 최소한의 수사적(言辭的) 지원은 할 것이지만, 카리브해에서 해상 봉쇄를 뚫을 만큼의 군사 행동은 불가능하다. 5월 7일 마두로와 푸틴이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것이 마지막 주요 교류였는데, 여기에는 글로벌·지역 안보, 테러 및 극단주의 대응, 역사 왜곡과 나치 찬양 방지 협력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동맹 지원 여력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이 실제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라 보지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 우크라이나 협상 지렛대로서의 베네수엘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협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지렛대가 필요하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미국에 넘길 생각은 없지만, 불필요한 군사 충돌도 피하려 한다. 따라서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군사적 긴장 고조 대신 기술·에너지·광업 협력을 심화해 미국 제재에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 최근 폴란드 사건과 서부 전선의 부담
러시아의 소극적 태도는 최근 폴란드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 19대의 러시아 드론이 폴란드 영공을 침범한 사건이 있었고, 바르샤바는 이를 고의적 도발이라 규정했다. 러시아는 서부 전선에서 추가 충돌을 감당할 수 없으며, 어느 정도의 안전보장을 필요로 한다.
■ 나토의 핀란드 배치와 러시아의 대응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문제에 침묵하는 동시에 나토의 러시아 국경 인근 주둔을 부각시키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위원회 부의장은 핀란드 국경 근처 레닌그라드 지역을 방문한 뒤 글을 올리며, 2023년 나토 가입 이후 핀란드가 방어 활동을 가장한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최근 레닌그라드 군관구를 재편성하고 추가 병력과 방공·연안 방어 체계를 배치했다. 메드베데프는 핀란드가 러시아를 공격한다면 “핀란드 국가의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드베데프의 과격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내 나토 배치는 북부 러시아를 위협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예를 들어 미켈리(Mikkeli)의 북유럽 사령부는 현재 약 10명의 인력만 보유하며, 몇 년 뒤에도 50명 수준으로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다. 그럼에도 푸틴이 국경 요새화를 지시한 것은 나토의 존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카리브해에서 러시아 잠수함을 용납하지 않듯, 러시아도 서부 국경에서 서방 군사력을 예의주시하겠다는 메시지다.
■ 북극·에너지 이해관계와 미·러 협상 확대 의도
러시아는 미국의 핀란드 관심 중 일부가 북극 개발이라는 상업적 이유와 연관돼 있음을 인식한다. 미국이 북극 개발에 참여하려면 쇄빙선이 필요한데, 세계 쇄빙선의 80%를 핀란드 기업이 설계했다. 동시에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중요한 산유국임을 잘 알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나토와의 전면전을 원치 않는다고 확신한다.
■ 결론: 미·러 협상 범위 확대를 위한 러시아의 계산된 침묵
크렘린은 미국이 카라카스 정권 전복이나 대규모 군사 에스컬레이션을 시도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문제와 핀란드·북극·발트 지역의 나토 활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제를 미·러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 한다. 러시아의 침묵은 군사 자원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협상에서 활용할 지리적 범위를 넓히려는 전략적 계산의 결과다. 지금까지 미·러 정상회담은 성과가 거의 없었지만, 모스크바는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정세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역 안보 전략: 사우디아라비아, 선택지를 열어두다 (0) | 2025.09.18 |
|---|---|
| 데일리 메모: 시리아의 안보 상황 (0) | 2025.09.18 |
| 데일리 메모: 남중국해 충돌, 인도네시아 시위 (0) | 2025.09.16 |
| 터키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다음 목표가 될 수 있을까? (0) | 2025.09.16 |
| 데일리 메모: 미·중 무역 긴장, 이스라엘의 가자시티 작전 준비 (1) | 2025.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