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카므란 보카리 | 2026년 2월 12일
이란의 미래는 두 개의 병렬적 군사 조직, 즉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정규군인 아르테시(Artesh) 사이의 권력 균형이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4~25년 이스라엘과의 분쟁 이후 IRGC가 약화되면서, 역사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던 아르테시는 정권 내부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맞았다.
IRGC가 취약한 이 시기에 아르테시는 우위를 확보하려 할 가능성이 크며, 반대로 IRGC는 추가적인 권력 약화를 막으려는 강한 동기를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슬람공화국의 지속 가능성은 이 두 경쟁 세력이 안정적인 권력 분점(power-sharing) 체제를 협상할 수 있을지, 아니면 더 깊은 경쟁으로 빠질지에 달려 있다.
최근 동향: 상징적 변화
최근의 사건들은 IRGC와 아르테시 사이의 장기적 권력 이동을 보여준다.
2월 8일, 약 40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지도자 **Ali Khamenei**가 공군의 날(Air Force Day) 기념식의 핵심 연설을 하지 않았다. 이 날은 1979년 혁명 당시 공군이 초대 최고지도자 **Ruhollah Khomeini**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대신 연설은 아르테시 지휘관인 압돌라힘 무사비 소장이 맡았다. 그는 지난해 12일간의 이스라엘 전쟁 이후 합참의장(Armed Forces General Staff)으로 임명되었다. 이 직위는 형식상 IRGC와 아르테시를 모두 감독한다.
같은 날, 아르테시 공군 지도부는 개혁 성향의 하산 호메이니(창건자의 손자)와 회동했다. 이는 정규군과 실용주의 정치 흐름 간의 정렬(alignment)이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루 뒤에는 아르테시 최고 지휘관들이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 및 미국 협상단과 직접 접촉했다. 이는 아르테시가 이란의 전략 및 외교 노선 형성에 점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IRGC의 약화와 전략적 타격
IRGC는 오랫동안 내부 분열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 최고 지도부(무사비의 전임자 포함)를 제거한 사건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 분쟁은 IRGC 지휘 체계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으며, 조직의 작전 일관성을 약화시켰다.
더 중요한 점은, 이란의 정치·경제 전반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 온 IRGC가 신뢰를 크게 상실했다는 것이다.
아랍 세계 전역으로 영향력을 투사하며 ‘전방 국가 방어(forward national defense)’ 전략을 구사해 온 수십 년간의 구상은 사실상 붕괴했다. 지역적 야망은 혼란에 빠졌다.
공군 방어 실패의 충격
이스라엘 공군은 이란 전역의 목표물을 사실상 제약 없이 타격할 수 있었다. 이는 IRGC가 첨단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방공 체계를 갖추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국내 경제 활동을 통제하면서도 본토 방어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란 엘리트 내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 전략적 실패가 바로 하메네이가 무사비에게 국가 방위 체계의 재조직과 현대화를 맡긴 이유다.
담론 주도권의 이동
수십 년간 IRGC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념적이고 선동적인 수사를 동원해 국가 메시지를 주도해 왔다. 반면 아르테시 장군들은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해 거의 발언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전쟁 이후 상황이 뒤바뀌었다.
현재 IRGC 지휘관들은 공개 발언을 거의 하지 않으며, 이는 최소한 국가 담론에 대한 영향력 약화를 의미한다.
반면 아르테시 지도부는 전면에 나서 전통적 국가 방위 개념을 강조하며, 이념적 수사 대신 전문적이고 통상적인 군사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
역사적 맥락: 1979년 혁명 이후
아르테시 입장에서 현재는 반세기 전 군주제 붕괴 이후 상실한 영향력을 되찾을 역사적 기회다.
1979년 혁명 이후 새 정권은 아르테시를 체계적으로 숙청했다. 고위 장교들은 처형되거나 망명했고, 정규군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다.
정권은 원래 아르테시 잔존 세력을 IRGC에 흡수해 두 개의 군을 유지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혁명 18개월 만에 이라크가 침공하면서 이런 계획은 좌절됐다.
당시 IRGC는 아직 초기 단계였고, 정권은 약화된 아르테시와 미성숙한 IRGC를 함께 투입해 8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 후 정권은 전문 군대와 이념 군대를 하나의 합참 체계 아래 통합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이중 군 체제의 구조적 긴장
두 군은 합참 아래 있었지만, 각자 육·해·공군과 정보 조직을 유지하며 제도적으로 분리된 채 남았다.
수십 년 동안 이 이원적 군사 체제는 깊은 경쟁을 낳았다. IRGC는 정치·경제를 지배했고, 아르테시는 비정치적 전문 군대의 역할을 유지했다.
IRGC는 규모는 작았지만 훨씬 많은 자원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강력했다.
이 균형은 오랫동안 유지됐는데, 이는 성직자 집단이 정치 체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성직자의 약화와 권력 이동
성직자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권력 중심은 신정 체제에서 IRGC로 이동했다.
하메네이는 2010년대 초반 IRGC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아르테시를 점진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자신이 단순한 명목상 최고사령관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IRGC는 혁명 이념에 충실했지만, 광범위한 국가 역할과 제재 압박 속에서 실용주의 파벌과 강경파로 분열되었다.
하메네이의 고령화와 함께, 그의 후계자는 군(특히 IRGC)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해졌다.
이 시기, 특히 하산 로하니 정부 동안 아르테시의 제도적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었다.
현재의 중대한 기로
오늘날 성직자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IRGC 역시 상당히 약해졌다.
두 군을 묶어주던 체제적 구심력은 크게 감소했다.
물론 현재처럼 내부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취약한 상황에서 어느 쪽도 체제 붕괴로 이어질 충돌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르테시 입장에서는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IRGC 역시 축소된 역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핵심 질문
아르테시와 IRGC가 이란의 극도로 어려운 정치·전략적 전환기를 관리하기 위해 공존 방식(modus vivendi)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성패는 제도적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조정하면서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파괴적 충돌을 피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에서 고통스러운 양보에 합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각 세력이 핵심 권위를 보호하면서도 국가 생존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란 군사·정치 질서의 향방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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